꼬닥꼬닥 서귀포 도보여행 안내서 <따라나서면 서귀포가 보인다>

우리가 아는 양관식은 생각보다 더 스윗(sweet)했다

금명 아빠: (결혼 날짜를 적힌 문서를 펼치며) 제주 쪽 날짜는 저희가 몇 개 받아서……
영범 엄마: 저희는 결혼식을 두 번 한다는 건 좀 남세스럽죠. 굳이 내려가 영범이 원숭이 노릇 시킬 것도 없고. 섬에서야 섬 나름의 풍습이 있겠지만, 금명이 이제 출가외인이고 우리 집사람이니까. 우리 스타일을 우선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금명 아빠: ……
영범 엄마: 어쨋든 그럼 한 군데서만 하시죠. 제주에서 하시겠어요? 그럼 저희가 안하고요.
금명 아빠: 아닙니다. 서울에서만 하시죠.

1990년대 제주에서는 결혼식을 앞두고 삼일 동안 잔치를 벌였습니다. 첫날은 ‘돼지 잡는 날’로, 신랑 신부 집에서 각각 잔칫날 손님에게 대접할 돼지를 잡아 삶습니다. 둘째 날은 ‘가문잔치’. 집안 경사를 축하하러 온 친지와 이웃에게 음식을 내고 안부를 주고받는 날입니다. 오랜만에 마주한 얼굴들이 옹기종기 모여 떠드는 소리로 마당은 북적입니다. 친척을 뜻하는 ‘괸당’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니네 딸은 뭐햄시니?”, “아들은 결혼했어?” 같은 질문이 거침없이 오갑니다.

사람들이 들어설수록 누군가는 청객을 하고, 누군가는 심부름에 나섭니다. 특히 아는 얼굴이 보이면, 고기를 나눠주는 ‘도감’에게 다가가 “아는 삼촌네 와부난예, 고기 호끔 더 줍서” 하고 너스레를 떨기도 하죠. 도감은 잔치를 총괄하며 고기가 모자라지 않도록 양을 조절하는 사람입니다. 그에게 잘 보여야 고기 한 점이라도 더 얻어먹을 수 있었습니다.

잔치 마당 한쪽에서는 제주 전통 윷놀이 ‘넉둥베기’가 벌어집니다. 종지, 윷, 멍석, 돌만 있으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죠. 종지에 나뭇가지로 만든 윷을 담고, 흔들어 던지면 환호성이 터져나옵니다. 윷 던지는 자세도 사람마다 달라 웃음이 끊이질 않습니다.

마지막 날 아침, 신랑집에서는 조상에게 제를 지내며 결혼 인사를 올립니다. 이후 신랑과 신랑 친척들은 사주 문서를 담은 함을 들고 신부집으로 갑니다. 신부 측 어른이 사주 문서를 확인한 뒤, 함께 식사를 하고 결혼식장으로 향합니다. 예식을 마치고, 신랑신부는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채 신랑 집으로 가 밥을 먹습니다. 식사가 끝나면, 신부 가족은 친정으로 돌아갑니다. 신부는 신랑 집에 남는데, 신랑 집안 어르신에게 인사드리기 위함입니다. 삼일 잔치가 끝낸 신랑신부는 신혼여행을 떠납니다.

1990년 10월, 서귀포에서 결혼했습니다. 저희 둘 다 제주에서 나고 자랐어요. 저희가 결혼할 때는 삼일 잔치를 했어요. 저희보다 윗세대는 5일 잔치를 하기도 했어요. 사돈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삼일 잔치 이후에 마련하기도 했던 거죠.

 가문잔치에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신랑) “거의 잔치가 끝나갈 무렵, 친구들과 아내 친정으로 갔어요. 윷놀이판에서 윷을 던졌는데, 저희가 전부 이겨버린 거예요. 아내 쪽 친척들이 돈을 많이 잃었죠. 장인어른 표정이 굳었어요. 안 그래도 돼지고기가 모자라 심기가 불편했는데, 사위 될 사람이 윷판에서 판을 쓸어가니… 결국 딴 돈은 다 돌려드렸죠. (웃음)”

결혼식 후, 드라이브도 가셨다면서요?

(신랑) "예식이 끝나면 신랑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드라이브를 갔어요. 저희는 일출봉에 갔죠. 친구들도 함께였고, 전날 잔치 음식도 싸갔어요. 잔디밭에서 음식을 나눠 먹고, 신랑신부에게 포옹해라, 뽀뽀해라 하며 웃기도 하고요. 그날 우연히 KBS 촬영팀을 만났어요. 신혼부부 프로그램 <신혼은 아름다워> 타이틀 영상 촬영이었대요. 6개월동안 저희 영상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그만 내려달라고 요청했었죠."

신랑집에서 밥을 먹고, 가족들이 친정으로 돌아갈 때 어땠나요?

(신부) “슬펐어요. 가족들이 차에 타고 돌아가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차로 10분 거리인데도.”

<폭싹 속았수다> 속 관식이가 가문잔치를 포기하자고 했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많이 섭섭했을 거예요. 금명이는 제주에서 자라 서울대까지 간 딸인데, 잔칫날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겠어요. 주변 사람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었을 텐데…”

관식이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행동에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고기 냄새 폴폴 나는 마을 잔치를 포기하면서까지 금명이를 배려한 거죠. 금명이가 상처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 부모의 마음입니다. 양관식은 다정한 사람입니다. 말보다 마음을 앞세우는 사람. 눈빛 하나, 말 한마디에 섬세한 감정을 담는 사람. 그가 지켜낸 건 딸을 향한 사랑이었습니다.